정도로 독서만 하여, 태종이 “세자 방의 모든 책을 치우고 쉬게 하라” 고 하자 매우 상심하다가 우연히 병풍
틈에서 발견한 ‘구소수간(歐蘇手簡)’을 발견하고 기뻐하며
책이 다 닳도록 읽는다. 세종은 태종이 모든 책을 돌려줄 때까지 그 책을 1,100번 읽었다고 한다.
1444년 2월 17일 최만리는 신석조(辛碩祖), 김문(金汶), 하위지(河緯地), 정창손(鄭昌孫) 등 집현전 내 훈민정음 창제에 반대하는
학자들과 함께 한글 창제 반대 상소문을 올렸다.
새벽닭이 울 때까지 한글 창제에
전념하시던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에
반대하는 신하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기로
생각하셨다.
"그렇다면 닭울음 소리를 한자로 써 보거라~ "
"哭己寤~?"
哭 울 곡 己 몸 기 寤 잠깰 오
'꼬끼오'가 '곡기오'? 닭 울음 소리를 한자로 써보라는 짐의
질문에 내놓은 답이 고작 이것이더란
말이더냐?
"......"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한자)로
서로 통하지 아니하여서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위하여
가엾이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하여금 쉬이 익혀 날마다 씀에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꼬끼오를 꼬부랑어로 써보거라~"
"cock-a-doodle-do~?"
Our language is different from Chinese, and the two countries' characters do not match. For this reason, my foolish people want to write something, but they could not easily write it with Chinese character. I have pitied my people, and I made 28 letters. I wish all my people would easily learn these new letters and make their lives more conveni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