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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인류의 희생을 막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2020년 이후 신종 전염병인 코로나19(COVID19)로 인해 약 615만 명이 사망했다. 전염병 전파를 막기 위해 여행과 모임이 제한됐고, 백신접종을 강요하기도 했다. 온 세상이 전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비극적인 추락을 경험했다. 왜 이렇게 코로나19가 무서운가? 죽음의 공포 때문이다. 죽음의 공포가 빨리 전파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서워 떤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일이 있다. 자살 문제다.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데 한편에서는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경우는 무슨 경우인가?
2020년 한국의 자살 사망자수는 1만3195명으로 10만 명당 25.7명을 기록했다.
하루에 36명이 목숨을 끊고 있다. OECD 회원국 중 1위라고 한다. 자살은 고귀한 생명을 끊는 일이기에 자신뿐만 아니라 남은 자들에게 큰 상처와 고통을 남긴다. 자살은 전염성이 매우 높다. 코로나와 비슷한 전염성을 지니고 있다.
최근 알랑 드롱이라는 배우가 안락사를 결정 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이런 뉴스가 있자마자 안락사에 대한 담론을 열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한편에서는 코로나19로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는데, 알랑 드롱은 안락사 하겠다 하니 이런 황당한 일이 어디 있을까?
희대의 인기를 누리던 그가 늙고 병들어 삶을 스스로 마치겠다고 한다. 그의 안락사 결정은 이 사회에 너무나 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 자명하다.
이 세상에 죽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는가? 우리 모두가 다 죽음을 향해 살아가고 있다. 그러기에 어떻게 죽느냐가 중요하다. 죽음의 공포 때문에 코로나를 무서워할 것이 아니라 죽더라도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잘 죽기란 거저 되는 일이 아니다. 잘 죽기 위한 도움(well being well dying)이 필요하다.
자신의 삶에 감사하며 이웃들에게 감사와 사랑의 말을 전하며 떠나는 죽음은 아름답다. 남은 자들에게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희망과 도전을 주는 죽음은 고결하다. 반면 자살과 안락사는 남은 자들에게 깊은 상처와 높은 전염성을 남긴다. 어떤 흔적을 남기는 죽음을 택할 것인지 결단해야 한다.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을 것인가? 교회는 여기에 답을 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의 잘되는 일만 강조하고 행복한 죽음에 관해서는 입을 다문다면 참된 교회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모든 삶은 태어날 때나 죽을 때 고통의 시간을 경험한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따뜻함과 안정감을 누리며 지내다가 출생의 순간 극심한 추위의 고통과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아이는 운다. 하지만 첫 호흡과 함께 어머니의 가슴에 안겨 젖을 무는 순간 곧 안정감을 찾는다.
인간이 죽음을 맞을 때도 여러 가지 육체적 고통과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죽음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거나 홀로 죽음을 맞을 때에 극심한 고독과 불안감을 경험하게 된다.
어떤 죽음을 맞을 것인지 평소 자신의 삶을 정리해 보아야 하지만 고독한 죽음을 맞지 않도록 교회는 따듯한 이웃이 되어야 한다. 설령 치매에 걸려 가족과 이웃을 몰라보고 정상인의 삶이 무너지더라도 교회와 가족과 이웃들이 나를 돌보아 줄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어야 한다. 교회는 성도들의 행복한 죽음을 도와야 한다.
받은 e-메일(등대님) 편집입니다! 2022.4.16.아띠할멈.(). http://blog.daum.net/jamyung820 |